| wee vol. 33 OUR TOWN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올해 초 이사를 했어요. 본래의 저라면 동네의 문화나 정서, 오고 가는 길의 풍경을 고려해 터전을 마련했겠지만 아이를 키우는 가족에게 이사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죠. 어린 시절 매일 자라는 곳에서 한 사람의 정체성이 생기고, 정신적 힘의 원천이 된다는 걸 알기에 더 쉽지 않은 고민이었어요. 오랜 고민 끝에 ‘걸어서 갈 수 있는 학교’, ‘일터와 가까운 집’ 두 가지 조건에 맞춰 지금의 동네를 선택했어요. 높은 층의 빼곡한 아파트에서 길을 잃기 일쑤였던 우리 가족은 어느덧 새로운 생활에 제법 익숙해졌어요. 아이는 하교 후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에서 수영을 배우고, 약속하지 않고 놀이터에 가도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해해요.

저는 아이를 등교시키며 탄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일상에 만족하죠. 봄이면 연둣 빛 새싹을 따라 길을 걷는 사람들, 초록 내음이 스며든 여름밤의 정취, 귀여운 새끼 오리가 어미 오리를 따라 물살을 타는 모습을 그윽하게 바라보며 동네에 마음을 붙여갔어요. 사람은 저마다 자기만의 울타리를 만들어 나만의 습관과 질서를 부여하며 살아가요. 지금 우리가 사는 곳에는 서툴지만 찬란한 부모의 시간과 넘어지고 일어서며 자신만의 세계를 넓히는 아이의 기억이 머물러 있지 않을까요?

이번 호는 지금의 자리를 선택하여 사랑과 에너지를 담고, 그 힘으로 살아가는 여러 가족의 이야기를 모았어요. ‘일과 집이 가까운 삶’을 택하여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을 선물 받은 ‘레트로킷’ 배선영 실장, 어린 시절 나고 공부한 곳으로 돌아와 ‘팔사진관’을 꾸려가는 부부가 오늘을 기록하고 매일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눠요. 궁금한 게 많아 섬 유학을 떠난 ‘만나다공원’의 세 식구, 내가 살 곳을 정하고 주변 사람을 모아 마을을 만든 앙평 ‘공흥리의 생각’ 단지 가족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과정도 살펴봐 주세요. 인터뷰 옆 조그만 자리에 가족의 발자취도 담았답니다. 소소한 재미가 되면 좋겠네요.

한 권을 엮으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자리에는 사랑만 남는구나’, 깨달았어요. 매일 밥을 먹는 식탁, 도란도란 책을 읽는 소파, 날마다 지나치는 거리의 나무도 사랑과 관심을 먹으며 자라죠.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동료로서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지금처럼만 나아가자고 등을 토닥이고 싶어요. 너무 애쓰지도 걱정하지도 말고 지금 당신의 자리에서 당신의 일과 역할을 해내기를. 지금처럼만 안녕하기를.